Month: April 2019

소 젖

관성은 물리학 법칙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습관도 관성처럼 무섭다. 어렸을 때 우유를 먹기 시작하면 대부분 성인이 되어도 계속 우유를 마신다. 우유는 송아지용 ‘소 젖’이다.

젖소는 새끼를 배지 않으면 우유를 생산할 수 없다.
태어난 지 1년 반이면 수정이 가능하다. 수태기간 10개월이 지나면 새끼를 낳고, 두 달 후면 또 인공수정으로 새끼를 밴다. 이것을 반복한다.
방목한다고 행복할까.

조화로운 삶

스캇니어링의 삶의 목표이자 그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영어명은 Living the Good Life.
뉴욕에서 버몬트 숲 속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산 스무해의 기록이다.

“도시를 떠날 때 세 가지 목표를 품고 있었다. 첫 번째는 독립된 경제를 꾸리는 것이었다. 우리는 불황을 타지 않는 삶을 살기로 했다. 할 수 있는 한 생필품이나 노동력을 시장에서 사고 팔지 않는 독립된 경제를 기획했다. 그러면 고용주든 자본가든 정치가든 교육 행정가든 우리에게 간섭할 수가 없을 것이었다. 두 번째 목표는 건강이었다. 우리는 건강을 지킬 뿐만 아니라 더 건강해지고 싶었다. 도시 생활은 여러가지로 우리를 조이고 억눌렀다. 건강한 삶의 토대는 단순했다. 땅에 발붙이고 살고, 먹을 거리를 유기농으로 손수 길러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세 번째 목표는 사회를 생각하며 바르게 사는 것이었다. 우리는 되도록 많은 자유와 해방을 원했다. 여러 가지 끔찍한 착취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지구의 약탈자로부터, 사람과 짐승을 노예로 만드는 것으로부터, 전쟁을 일으켜 사람을 죽이고, 먹기 위해 짐승을 죽이는 것으로부터 말이다.”

와튼스쿨 경제학 박사로 대학에서 사회학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반전운동가. 버몬트로 들어가서는 자급자족을 하고 채식주의자로 살았다. 농사철에는 농사짓고 겨울에는 책을 쓰거나 강연을 했다. 하루 중에도 반은 노동을 하고 반은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는 지적인 시간을 보냈다. 100세가 되던 해 곡기를 끊고 스스로 죽음을 맞이했다. 아내 헬렌의 무릎을 베고 잠자는 듯 떠났다.

어제 오늘 몸살로 비몽사몽했다. 책꽂이에서 오래된 책을 꺼내 읽으며 반성을 했다. 그의 세 가지 목표에 한 가지도 부합하는 게 없다.

잔디의 폐해

잔디처럼 쓸데없는 짓이 없다. 물 주고 열심히 키워서 보기 좋을만하면 싹 잘라서 남김없이 가져간다. 먹을 것도 아니면서 주변 낙엽까지 공기로 흡입해서 몽땅 거둬간다. 그리고 버린다. 잔디 파란 색깔 좀 보자고 지력을 끊임없이 약탈하는 것이다.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짓이다.
잔디를 오래 키운 땅은 반드시 지력이 쇠해 죽는다. 지금 파란 것은 비료의 힘으로 사는 것이다. 넗은 잔디가 보기 좋은 20세기 미국 대학 캠퍼스의 땅은 모두 죽은 땅이다.

미 건국 초기 목축업을 미국을 사막으로 만든 원흉으로 지적하는 이가 많다. 자연 생태계를 무시하고 수 천 에이커를 불도저로 민 다음 알팔파를 심는다. 물 주고 베어내서 소 먹이고, 또 키우고 베어내고. 잔디의 원리와 동일하다.
건초 사업도 마찬가지다. 알팔파를 키워내 중국에 사료로 수출한다. ‘황금 작물’ 어쩌고 떠들지만 대형 농장주들이 사업에서 손을 떼는 순간 그 넓은 땅은 사막이 된다. 캘리포니아도 본래 사막이 아니었다.

텃밭에서 호박을 키워 먹으면, 호박만 따고 줄기와 잎은 흙으로 돌려주자. 이게 자연농법의 원리다. 깔끔 떤다고 모두 걷어내서 버리면 토양 미생물은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살림살이를 줄이는 ‘뺄셈의 경제학’이 필요하지만 땅의 입장에서는 ‘플러스의 경제학’이 좋다. 더 주지는 못할망정 뺏어먹지는 말자. 우리 후손들도 써야 할 땅이다.

뽕나무 새 순이 돋다

뽕나무에 새 순이 돋았다. 필랜은 해발고도가 높아서 싹트는 시기가 LA보다 좀 늦다.
외등에 날파리들이 덤벼들기 시작하고 야생 메추리들이 줄지어 다니는 걸 보니 봄이 왔나보다.
흰 나비와 노랑나비가 지천으로 날고 이름 모를 새소리가 많이 들리는 걸 보니 날이 정말 풀렸나 보다. 아직까지 늦서리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올해 매실은 풍년이 들겠다. 메추리 가족은 어디서 월동을 하고 꼭 봄에만 나타날까. 식물은 날이 풀린 줄 어떻게 알까.

식물의 생체시계 이론은 들먹이지 말자. 나는 스마트폰의 터치 스크린 원리도 이해가 안간다. 자연의 오묘한 섭리가 쉽게 이해될 리가 없다.
“무엇보다 인간이 자연을 알고, 자연을 이용하여 인간의 문명을 열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착각이었다. 인간이 자연을 ‘안다’고 할 때, 그것은 자연 그 자체, 그 본질을 밝히는 것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통일적인 생명체인 자연은, 인간의 지식으로 분해한다거나 해석한다거나 하는 분별을 허락하지 않는다. 한 번 해체된 자연은 이미 본래의 자연 그 자체가 아니다.”

자연은 해마다 겨울에서 봄으로 멋지게 비약을 하는데 사람만 어제와 오늘이 똑같고, 분주하다.

“백목련이 피면 나도 핀다.”

“백목련 꽃이 피고, 다만 그것 뿐인데 공연히 기쁘고 행복한 것은 무슨 때문인가?…
그 감정은 생명의 가장 깊은 영역에서 작용하고 있는 ‘공명현상’이란 본질에 뿌리를 두고 일어난다. 우리 몸속의 유전자에는 우리가 식물이었던 때의 기억이 분명히 남아 있기 때문에 꽃 한송이가 피면 이웃가지의 꽃도 동시에 피는 것처럼 우리도 절로 꽃 피워지는 것이다.”

야마오 산세이는 서른 아홉에 작은 섬으로 이주하여 예순 셋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농사를 지으며 시인이자 구도자로 살았다. 하루 중 반나절은 농사일을 하고, 나머지 반나절은 ‘지구 즉 지역, 지역 즉 지구’라는 관점에서 명상하고 연구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생활을 했다고 한다.
지구의 주민이 단지 인간만이 아니고 무기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지구에, 지역에 동시에 소속돼 있음을 일깨우려했다. 그는 지구 크기로 생각할 것을 권유했다.

“빗속에서 피는 담배 맛은 특별하다. 그날 일에 만족하면서 천천히 담배를 피고 있는데 문득 20미터 정도 저쪽 강 언덕에 활짝 피어 있는 꽃이 눈에 띄었다. 이대로 충분히 행복하다.”고 그는 읊었다.

자연농법에 발을 디디게 되면 후쿠오카 마사노부, 가와구치 요시카즈에 이어 야마오 산세이까지 이어진다. 이들의 생각은 생명 존중, 생태계의 복원, 자연과의 합일로 모아진다. 이들을 한국에 알린 사람은 최성현이다. 그도 역시 홍천에서 자연농 농부로 살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 30대 때에 조한규의 ‘자연농법’ 세미나에 참석한 후 농사에 입문, 30여 년을 머릿속으로만 농사를 짓고 있다. 좋게 말하면 숙성 중이고 나쁘게 말하면 차일피일 세월만 간다. 아무려면 어떤가.

야마오 산세이가 조언한다. “서두르지 않는다. 집중한다.”

기후변화와 텃밭 농사

기후변화는 비상사태다.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다.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남의 일처럼 보면 안되는 것이 공멸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각국에서 머리를 맞대고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기계를 만들어 낼지 의문이다.

녹색평론(163호) 발행인 김종철은 책의 서론에서 가디언(2018.10.19)의 사설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자연생태계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온 대표적인 지역의 하나인 푸에르토리코의 우림에서 지난 40년 동안 곤충의 수효가 약 60분의 1로 줄어들었고, 그 결과 곤충을 먹고 사는 새와 도마뱀 등도 3분의 1 내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심히 불길한 느낌을 억제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현상이 세계 도처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곤충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가? 먹이사슬의 바로 위에서 곤충을 먹고 사는 새들이나 여타의 작은 동물들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결국은 빈틈없는 연쇄구조로 연결되어 있는 생태계가 전면적으로 붕괴하고, 끝내는 인간을 포함한 고등 생물들의 삶도 조만간 끝날 것이 아닌가?

기후변화대응에너지전환 협동조합 감사인 이치선은 녹색평론에 기고한 글을 통해 지구의 기온 상승을 1.5도(섭씨)에서 막는다면 인류는 과연 안전할까? 인류가 지난 1만 년간 문명을 꽃피워온 안락한 기후환경이 지속될 수 있을까 라고 우려했다.
“현재 지구의 기온이 산업혁명 이전과 비교할 때 1도(섭씨) 올랐으므로, 지속적인 화석연료 연소로 인한 기온 상승과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서 대규모로 (이산화탄소보다 30배나 더 강력한 온난화 유발 개스인) 메탄이 방출되는 효과가 더해지면 0.5도 상승은 시간문제다. 북극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고 있고, 조만간 (아마도 2025년 무렵) 여름철에 완전히 사라지고 나면 메탄 분출이 가속화 할 것이고, 그중 50Gt(기가톤)이 먼저 풀려날 가능성은 적어도 50% 이상이다. 화이트맨 연구팀에 의하면, 2025년까지 메탄 50기가톤이 방출될 경우, 0.6도의 추가적인 온도상승이 발생한다. 0.6도 상승에 도달하는 때는 2040년 무렵이지만 0.3도 상승은 불과 수년 내라고 전망했다.”

김종철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양심적인 정치가, 지식인들조차 농사에는 절대적 무지상태에 갇혀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요컨대 지금 우리는 진정한 농사란 무엇이며, 생태계의 장기적 보존을 위해 흙을 보호하는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리고 그 흙을 보호하는 데는 왜 대규모 농산업이 아니라 반드시 소규모 농민이 중심이 된 농촌공동체가 살아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아무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
가디언은 결론적으로, 기후변화라는 엄중한 사태에 직면하여 우리가 개인으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손쉬운 일로서 ‘캉디드’의 작가 볼테르의 권유대로 우리가 각기 나름대로 텃밭을 가꾸는 사람이 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는 이산화탄소와 메탄 개스가 마치 비닐하우스처럼 대기 중에 막을 형성하여 열을 방출하지 못하게 막는데서 발생한다.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고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꽃밭을 만들자

필랜에서는 매실을 많이 심고, 루선밸리 지역은 대추를 많이 심는다. 취재를 하러 농장에 다녀보면 애써 꽃밭을 가꾸는 사람은 없다.
땅 한 뙈기라도 생산적인 곳에 사용하려는 심정은 알지만 농장을 나올 때면 좀 허전하다. 반면에 도시에 사는 지인들은 꽃밭은 가꾸는데 야채밭은 없다. 이 둘의 밸런스가 아쉽다.

독일은 주말 텃밭이 잘 발달돼 있다고 한다. 클라인 가르텐(Klein Garten), 작은 정원이라는 뜻이다. 독일 전역에 100만여 개가 활성화돼 있다. 이 주말농장은 삼분의 일이 정원, 삼분의 일이 텃밭, 나머지는 농막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꽃밭을 가꾸는 그들의 여유가 부럽다.

태어난 별로 되돌아 갈 때는 돈은 고사하고 육신마저 놓고 가야 한다. 내가 만든 스토리만 가지고 간다지 않은가. 고향의 꽃을 가꾸고 씨를 나누고 아름다운 모습을 눈에 담아 놓으면 그건 온전한 내 것이 된다.

‘자연이 가득한 집’ 4월호에는 고영아씨가 알려준 ‘고향의 꽃’ 리스트가 있다.
개나리(forsythia), 코스모스(cosmos), 맨드라미(celosia), 봉선화(impatiens balsamina-balsam), 백일홍(zinnia),  철쭉(azalea), 접시꽃(hollyhock) 나팔꽃(morning glory – 다년초와 1년초가 있는데 한국에서 보던 것은 1년초다), 분꽃(mirabilis jalapa 혹은 four o’clock), 국화(chrysanthemum), 채송화(portulaca), 한련(nasturtium), 금잔화(calendula, marigold), 제비꽃(반지꽃, 오랑캐꽃-viola), 라일락(lilac), 달리아(dahlia).
영어명과 함께 적었으니 동네 너서리나 아마존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나도 야생 토끼 핑계만 대지말고 잡초 가득한 뜰에 코스모스라도 심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