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 March 2019

부지런한 농부가 사막을 만든다

1600년대 사람들은 식물이 흙을 먹고 자란다고 생각했다. 욕조에 흙을 담아 놓고 식물이 흙을 얼마나 먹는지 실험을 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물은 필요하지만 흙을 먹지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후 광합성의 공식(6CO2 + 12H2O + 빛 에너지 → C6H12O6 + 6O2 + 6H2O)을 알아내기 까지 200여 년이 걸렸다.
식물은 물과 이산화탄소, 햇빛만 있으면 포도당(C6H12O6)을 만든다. 이는 사람을 포함한 동물들이 음식물(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을 섭취하여 포도당을 만드는 이치와 똑같다. 포도당이 곧 에너지다.

식물이 영양분을 공급받는 곳은 뿌리다. 특히 질소는 공기중에 아무리 많아도 사용할 수 없다. 반드시 뿌리에서만 흡수할 수 있다. 이때 필요한 미생물이 근권미생물(Rhizobacteria)이다. 뿌리 근처의 미생물이라하여 근권미생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뿌리 근처에는 수많은 미생물이 산다. 한 주먹의 흙 안에는 수 억마리의 미생물이 있다. 이 미생물들과 식물이 공생한다. 식물이 광합성으로 만든 포도당을 건네주면 이 미생물들은 식물이 필요한 영양소를 이온화시켜 뿌리가 흡수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동물(미생물)이 식물을 살리고, 식물은 다시 우리를 살리는 공생관계가 이루어진다.

주변이 온통 봄 풀로 가득하다.
지난 겨울 죽지않고 땅속에 휴면하고 있다가 일제히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 봄 풀의 뿌리도 근권미생물과 공생을 한다. 생명은 모두 연결돼 있다.
부지런한 농부들은 빈터에 잡초가 있는 꼴을 못본다. 잡초가 있으면 스스로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말발굽처럼 생긴 툴을 이용하여 잡초를 뿌리까지 긁어낸다.
주변은 깔끔해지지만 뿌리에 붙어 있던 미생물은 모두 죽는다. 그리고 땅은 황폐해진다. 이게 반복되면 풀 한포기 없는 사막 땅이 된다.

가시풀이나 잡초의 줄기가 단단해지지 전에 윗둥만 쳐내면 토양 속의 미생물들은 살 수 있다. 토양 미생물들은 양분의 이온화 뿐만 아니라 항생물질을 분비해 식물을 병충해로부터 지켜주고 토양을 개량해 준다. 이들을 살려야 땅이 살고 식물이 살 수 있다.
텃밭을 하건 나무를 키우건 근권미생물이 재배의 핵심이다. 공생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터 시작된다.
풀은 그냥 놔두는 것이 자연을 돕는 길이다. 제초제를 뿌리는 일은 최악이다. 식물이건 동물이건 지상에서 불필요한 생물은 없다.

부화

나는 닭을 10마리 키운다. 예술사랑을 운영하는 김성일씨에게서 물려받은 닭들이다. 연장을 넣는 광을 치우고 일부를 닭장으로 쓰고 있다.
날이 풀리니 암탉이 알을 품는다. 암탉 한 마리가 계란 7개를 품는 중이다. 다른 닭들은 알 품는 것에 관심이 없는데 유독 한 마리만 알을 품으려고 한다. 알을 꺼내려 가면 벌써 며칠 전부터 그 닭은 알 위에 앉아 있었다. 사람이 가도 무서워하지 않고 비키지도 않는다. 몸통째 들어 올려서 옆으로 치우고 알을 꺼내도 그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한다. 대단한 집착이다.

이틀 간 모은 계란 중 크고 좋은 것을 마커로 표시를 하고 암탉 밑에 넣어 주었다. 표시를 하지 않으면 품고 있는 계란 위에 다른 닭들이  또 낳기 때문에 어떤 것이 부화시킬 알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이제 3주(21일)만 기다리면 병아리가 탄생한다. 7마리 중에서 몇 마리가 암탉이 될지 궁금하다.
지금 있는 10마리 중에서 수탉이 두 마리여서 늘 싸운다. 수탉 한 마리는 다른 곳으로 보내고 암탉의 숫자를 더 늘려야 한다. 보통 수탉 한 마리에 암탉 12마리가 적당한 암수비율이다.

수탉이 새벽에만 우는 것이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소리높여 운다. 닭이 울면 희망을 노래한 이육사의 ‘광야’가 생각난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계란을 부화시키는 이유는 병아리로 만들어서 암수비율을 맞추려는 의도도 있지만 한 켠에는 그들이 학습한 전통을 잇게 하려는 생각도 있다. 어미닭이 품어서 깐 닭만이 나중에 또 알을 품는다고 한다. 기계로 인공부화시킨 병아리들은 성장해도 알을 품지 않는다고 한다.
어미 닭의 체온만으로 생명이 탄생하고 그 닭이 체온을 기억하여 또 다시 알을 품는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닭들도 강아지들처럼 모이를 주러 가면 우르르 몰려온다. 맛있는 것도 안다. 밀웜(갈색 거저리) 봉지를 들면 뒤뚱거리며 정신없이 뛰어온다. 색다른 먹이를 발견하면 수탉은 제가 안먹고 암탉을 부른다. 부르는 소리와 표정을 보면 우리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나에게 매일 알을 선사하는 귀여운 생명들이다.

 

텃밭 농사의 이로움

나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프로를 좋아한다. 산속에 사는 그들은 바깥세상에서의 경쟁이 얼마나 무의미한 지를 일깨워 준다. 병으로 죽음의 고비를 넘긴 사람, 사업 실패로 전재산을 날린 사람들이 자연에 묻혀 살면서 삶의 가치와 희열을 되찾는다. 그들은 자연의 품속에 안긴 것을 최선의 선택이라고 강조한다. 프로를 보고 메멘토 모리(죽음을 생각하라)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경쟁과 불화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위대한 사람들의 무덤을 바라볼 때, 내 마음속에 있는 시기심과 같은 모든 감정은 사라져 버린다. 미인들의 묘비명을 읽을 때, 무절제한 욕망은 사라져 버린다. 아이들 묘비에 새겨진 부모들의 슬픔을 읽을 때, 나의 마음은 동정으로 누그러진다. 옆에 있는 그 부모들의 무덤을 볼 때, 곧 따라가 만나야 될 사람을 슬퍼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쫓겨난 왕들이 그들을 쫓아낸 사람들과 나란히 묻혀 있는 것을 볼 때, 또 서로 경쟁하고 다투었던 사람들이 나란히 묻혀 있는 것을 볼 때,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놀라게 했던 성인들의 무덤을 볼 때, 나는 인간들의 하잘것없는 경쟁, 불화, 논쟁에 대해 슬픔과 놀라움에 젖는다. 묘비에 적혀 있는 날짜들을 읽어가면, 어제 죽은 사람도 있고, 600년 전에 죽은 사람도 있다. 이를 보며 나는 우리 모두가 부활하여 함께 살고 동시대의 사람이 되는 그날을 생각해 본다.
(스티븐 코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그러나 우리 모두가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내가 사는 곳을 ‘자연’스럽게 만들면 된다. 텃밭 경작이 그것이다.

100% 자급자족은 불가능 하다. 조금씩 자급하는 품목을 늘려 간다.
텃밭에서 먹거리를 스스로 생산해보는 것이다. 몸을 움직이면서 먹거리도 얻고, 건강을 지킬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낸다. 키우는 재미까지 더해지면 일석삼조다.

원거리에서 키워진 작물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식물은 고된 여행을 한다. 덜 익은 것을 미리 추수하니 일단 맛이 없다. 추수 후 식물의 영양분 파괴와  운송트럭의 개솔린 소모와 이산화탄소 배출은 심각하다. 내가 키워서 먹을 수 있으면 이 모든 문제가 한 번에 해소된다.

텃밭에서 수확한 야채는 냉장고에 오래 놔두어도 잘 물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마켓에서 사온 야채는 쉽게 무른다. 생물조직의 치밀함의 차이다. 자연과 부자연스러움의 차이다. 특히 자연과의 일체감을 느끼기에는 농사가 최고다. 여행도 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농사만큼 못하다. 텃밭 농사가 자연을 배우는 공부가 된다.